본문 바로가기

책읽기

[메타버스] (김상균, 2020)

  • 어느 날인가부터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자주 띈다.
    • 호들갑이 절반 정도 섞인 기사들.
    • 찬찬히 읽어볼라치면 기자도 잘 모르고 쓴 것 같고, 여기저기 글들을 잘라붙인 느낌이 든다.
    • 블록체인 공부를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. 쓰라고 하니까 쓴, 자기도 모를 듯한 느낌의 글들.
    •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글을 읽고 메타버스에 대해 받은 느낌은 이 것.
    • "내가 하던 게임이랑 뭐가 다르지? 경우에 따라 VR이 추가된 정도? 회사에 적용하면 스마트 팩토리인데?"
    • "새로운 게 하나도 없어보이는데 왜 뜨는거지? 내가 모르는 다른 게 있나?"
    • 투자를 하건 대비를 하건 개념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의가 고팠다.
  • 내 해석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.
    •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정보 저장 및 교환 방식이다.
    • 그러나 메타버스는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에 없던 기술이 아니다.
    • 카카오톡, 페이스북 등 코로나 이전에도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에 주목받은 것이 언택트(untact).
    • 현실을 초월한(meta) 세계(verse)라는 뜻의 메타버스는 언택트 세계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.
    • 종류에 따라 증강현실(포켓몬 고), 라이프로깅(페이스북), 거울 세계(카카오톡), 가상 세계(WoW: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)로 나눌 수 있지만, 사실상 디지털과 무관하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다.
    • 페이스북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종이에 펜으로 쓰던 일기장도 라이프로깅(life logging)이고,
    • '사회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라' 같은 조언에 놀이 문화를 끼얹은 것이 마미손(매드클라운), 유산슬(유재석) 같은 요즘의 부캐(sub-character)로 대변되는 멀티 페르소나일 뿐이다.
    • 꼭 증강현실, 가상현실 기술이 없어도 게임 속에서 나는 사령관(스타크래프트)이고, 아버지(프린세스메이커)이며 왕실 중흥을 꿈꾸는 한나라 왕실의 후예(삼국지)였다. 게임을 접하기 이전 독서에서 느낀 감정도 다르지 않다.
  • 통계학자들이 머신러닝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.
    • 머신러닝이 대두될 때 계량경제학을 비롯해 기존 통계를 하던 분들의 저항감이 심했다고 한다.
    • 그 분들 입장에서는 데이터의 패턴을 찾아서 예측하는게 새로운 기술도 아닌데 갑자기 붐이 일고 자금이 쏠리니 당황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.
    • 이 분들은 코딩을 못하시는 분들도 아니었고, 데이터를 껴안고 사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삶이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을 수도 있다.
    • 오히려 이 분들 기준에 영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머신러닝을 한답시고 자금을 끌어가고,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엉터리 결과물을 내놓는 것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.
    • 저 분들의 분노와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머신러닝은 통계학이 주지 못한 것을 우리에게 선사했다고 생각한다.
    • 알파고는 앞으로의 우리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설명 없이 결과로 보여주었다.
    • 무료로 공개된 사이킷런과 텐서플로는 통계학 이론을 몰라도(!) 통계학 원리가 적용된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, 내가 인류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.
    • 잘 정제된 보고서, 간혹 뉴스에서 편린으로만 보이던 통계와 데이터의 중요성을 알려준 것은 어려운 이론에 해박한 통계학자들이 아니라 때로는 약장수로 보이기도 하는 머신러닝이었다.
  • 혼자에서 함께로.
    • 메타버스의 구성 요소라고 하는 것들을 뜯어보면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.
    • 여러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실시간 소통하는 것조차 대중화된지 20년이 넘은 기술이다.
    • 그러나 게임, 일기장, 부캐에 실시간 소통이 가미되자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.
    • 여러 사람이 모이며 사회가 만들어지고, 가상의 공간에서 우정, 배신, 협력, 절도가 발생한다.
    • 실제 세계의 많은 부분이 가상 세계에 복제되고 있으며 정보의 취사선택과 상상력 실현을 통해 리얼 월드에서 발생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.
    • 실제 세계를 본따 만들었지만 가상 세계의 자유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.
  • 놀이가 우리를 닮아간다.
    • 기독교에는 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는 교리가 있다.
    • 성경에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. 그러나 만들고 나서 스스로 흡족해 했다는 대목은 있다.
    • 국민학생 시절 왜 하느님은 굳이 세상을 만들어서 사람에게 분노하고, 홍수를 내리고, 자기 아들까지 희생시켜가면서 사람을 구원하려고 할까 궁금했다. 
    • 신부님과 목사님들을 찾아다니며 물었고, 가장 납득이 가는 대답은 목사 작은아버지께서 주신 "자기 만족".
    • 비슷하게, 우리 삶을 편하게, 재밌게, 흥미롭게 하려고 만든 기술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복제하고 있다.
    • 저자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(Homo Deus: 신이 되려는 인간)를 인용한다. 동의한다.
  • 메타버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.
    •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그 자체로 즐긴다 - 좋아하는 아이돌을 만나고, 자기만의 섬을 만든다.
    • 누군가는 메타버스 수혜주를 찾는다 - 엔비디아, 오큘러스, 페이스북, 닌텐도, 유니티에 투자한다.
    •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경계한다 - 독서와 사색,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.
    • 저자는 메타버스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또 하나의 사회임을 이야기하며
    • 각 메타버스에 맞는 소통 방식을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한다.
  • 메타버스는 새로운 사회다.
    • 우리는 부모님의 출산을 통해 실제 세계에 등장했다.
    • 교육을 통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친구와 연인을 만나고 가족을 이룬다.
    • 신체의 발달과 노화와 더불어 학교, 회사, 동호회라는 많은 사회에 들어가고 나온다.
    • 메타버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.
    • 계정 생성을 통해 메타버스에 발을 들이고, 시행착오를 거치며 게임이건, SNS건 메타버스의 규칙을 알아간다.
    • 메타버스의 규칙은 운영진이 일차적으로 만들지만 문화나 예의 같은 세세한 규칙은 사용자들이 스스로 만든다.
    • 내가 속한 메타버스를 내게 즐거움과 이익을 주는 곳으로 만들지, 그 반대일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.
    • 실제 세계도 마찬가지다.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간다.
  • 저자 : 김상균 교수
    •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. 
    • 학부때는 로보틱스, 석사때는 산업공학, 박사때는 인지과학, 교환교수 시절에는 교육공학을 공부했고
    • 학부시절 게임 개발자를 거쳐 스타트업을 두 번 창업했다.
    • 투자기관의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산업공학과 교수가 되었고,
    • 책 중간중간에 본인이 지은 SF 소설 중 일부를 인용한 데서 보듯 문학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.
    • 본문 중 예시로 게임을 여럿 들고 있는데, 적어도 몇 개는 본인이 몰두했던 흔적이 느껴진다.
    • 이런 이력이 메타버스를 잘 이해하고 글로 전달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같다.
    • 기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. 재미있을 것 같다.
  • 현란한 미사여구가 없어서 좋은 책
    • 표지에는 "늦기 전에 디지털 지구 - 메타버스에 올라타라"는 자극적인 글이 있다.
    • 저자보다는 출판사의 홍보 전략인 것 같다.
    • 저자는 다소 들뜬 어조로 메타버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, "올라 타라"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다.
    • 우리가 이미 여러 메타버스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,
    • 개인이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여러 예시를 들며 이야기한다.
    • 궁극적으로 메타버스도 사람들이 모인 공간인만큼 세상사 장단점이 벌어질 수 있고, 
    • 온라인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오프라인보다 약한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.
  • 메타버스 25년차로서 공감이 많이 된다.
    • 대학 입학과 동시에 여러 일을 겪으며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생활을 많이 하고 있다.
    • 아이디(ID: identification)이라는 이름과 달리 온라인의 나는 실제의 나와 매우 다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.
    • 나의 성장과 발전에 부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.
    • 실제 세계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 느낌을 가상 세계에서 느낄 수 없지만,
    • 가상 세계에서 같은 주제와 관심사로 생기는 유대감은 실제 세계에서 느낄 수 없다.
    • 공각기동대의 대사처럼, "네트는 넓다"
    • 오늘도 다른 날처럼, 메타버스에서 많은 것을 채우는 하루가 될 것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