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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](박한슬 著, 2022)

● 병원

- 의사나 간호사, 약사가 아닌 다음에야 병원을 방문하는 신분은 대개 두 가지다. 

- 환자, 아니면 보호자.

- 대개 환자 신분으로 방문하고 가족이나 지인이 환자일 때면 보호자가 되어 수속이나 병문안을 한다.

- 접수를 하고, 대기를 하다가 의사를 만나고, 검사와 진료, 처방을 받은 뒤 약국을 들러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다.

- 간혹 진료 결과가 중하기라도 하면 입원을 하거나 더 큰 병원에서 위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.

- 의료 행위의 대가로 진료비 등등을 지불하고 집에 나서면 다시 일상이다.

 

● 의료 종사자의 관점

- 내 직업이 의사나 간호사, 약사 같은 의료 종사자라면 같은 일도 180도 달라진다.

- 간호사의 입장에서는 교대 근무를 서며 빼곡한 스케줄로 엄한 선배의 지도를 받아가며 긴장을 늦출 새가 없고

- 의사의 입장에서는 병원 운영을 위한 경제 논리와 환자의 건강을 위한 의사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.

- 국가에서 의료 정책을 설계하거나 집행하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행위를 보고서에 적힌 글과 숫자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.

-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단편적인 부분만 보이지만 이른바 의료 시스템이 굴러가는 것이다.

 

● 시스템

- 작게는 동네 의원 종사자들의 생업부터 크게는 한 해의 86조원이 넘는 건강보험공단의 예산을 집행하는 일까지

- 작게는 약국에서 반창고 하나를 사는 일부터 크게는 의사가 없는 곳의 응급 환자 대응을 고민하는 일까지

- 처한 위치에 따라 느껴지는 입장과 정도는 다르겠지만 전 국민이 우리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다.

- 그리고 누구나, 개인은 의료보험료 납부로, 반창고 회사는 제품으로, 물류회사는 운송으로 시스템에 기여하고 있다. 

- 시스템의 여러 부분들은 지속 가능하며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합리적인 논의의 결과물이며

- 많은 일들이 그렇듯 부분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이것들이 얽히면 묘하게 불합리적인 부분이 드러난다.

- 경우에 따라 불합리가 합리를 압도하기도 하며, 이 틈새를 메우는 것은 대개 현장에 있는 개개인의 헌신이다.

 

● 인구 구조 변화

- 직업상 데이터를 다루다보니 언론의 그래프가 허투루 보이지 않고 데이터를 통해 큰 흐름을 읽고자 노력하게 된다.

-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보는 추세는 인구 변화인데, 이미 줄기 시작했지만 10여년 이후 급격한 내리막이 예고되어 있다.

- 조세 정책을 비롯해 교육, 산업, 보건, 국방 등등이 피라미드형 인구 구조에 기반해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정책 전반에 걸쳐 대 변혁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주시하고 있다.

- 군부대 해체, 서울 시내 소재 일반고 폐교 (지방 대학 폐교는 이젠 뉴스거리도 안된다), 정년 연장 공론화, 전현 직장에서 느껴지는 관리자의 실무자('플레이어+매니저' 팀장)화 등 우리 사회는 이미 시스템 변화를 엄중하게, 그러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.

 

● 의료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

- "현재의 의료 정책은 젊은 인구에 기대어 가까스로 평형이 맞춰진 상태입니다. 각자 나름의 불만은 있더라도 돌아가고는 있죠. 그런데 현재의 장년층이 의료 서비스 주요 이용계층인 '노인'이 될 때쯤에는 인구구조 자체가 지금과는 판이해집니다. 경제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보다 노령인구가 더 많아지는 역삼각형 구조가 자리를 잡게 되죠. 그러면 지금과 같은 의료 서비스 이용은 더는 가능하지 않습니다." (여는 글 中)

- 의료계는 나와는 관련이 적은 곳이라 생각하고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며 철저하게 소비자 관점에서만 보고 있었다.

- 노후에 병원비 많이 든다는데 미리 건강해야지. 젊어서 돈 많이 벌어야겠네. 딱 여기까지.

- 하지만 의료도 시스템이다. 20년 뒤 아이들이 선호할 직업은 지금 뜨는 직업들과 많이 달라질 만큼, 20년 뒤 내가 다닐 병원 시스템은 지금의 시스템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.

 

● 현재의 의료 시스템

- 저자는 이 책에서 의료 시스템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에 앞서 현재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친절히 알려준다.

- 왜 간호사들 사이에 태움 문화가 잘 사라지지 않는지,

- 왜 외과 등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의사들이 기피하는지,

- 왜 어디가 아파 병원에 가면 왜 검사 장비들 앞에서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서 의사들은 잠깐 보고 마는지, 

- 왜 동네 병원에서는 사안이 중하다 싶으면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지,

- 왜 약국에서는 아침, 점심, 저녁으로 약을 포장해서 주는지.

- 왜 서울 병원이 실력이 좋다고 소문이 나는지.

- 의사들은 왜 코로나 시국에 파업을 했으며, 내 의사 친구는 그렇게 심평원을 싫어하는지.

- 평소에도 저자의 컬럼을 통해 설명력이 좋다고 느끼고 있었는데, 이 책에서 피상적으로만 느끼고 가끔 조금씩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 옆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준 느낌이 든다.

- 그리고 조곤조곤한 설명 끝에 두 개의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: 의료 인력 증원 원격 진료.

- 여기에 마지막으로 예방의학적 접근 강화와 (외과 등 필수적이지만 기피대상이 되는 과에 대한) 보상 강화, 닥터헬기 등 지방의 응급 의료 해결안을 제시한다.

- 독자에 따라 공감, 동의, 반론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.

 

● 시스템 붕괴를 걱정하는 약사의 글

-  저자인 박한슬님의 직업은 약사.

- 의료시스템의 한가운데서 생업을 영위하시는 분으로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.

- 그리고 저자 소개의 가족 구성이 인상적인데, "병원 행정직 아버지, 대학병원 간호사 어머니, 소아과 전공의 여동생".

- 일전에 할아버지부터 온 가족이 법조계에 있는 집 아이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명절에도 법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.

- 본인의 직업은 약사이지만 의사와 간호사, 병원 행정직을 가족으로 두고 있어서인지 의료계 구성원들의 입장을 균형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잘 느껴진다.

 

● 마지막으로

- 한국의 의료 문제가 의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.

- 사람을 갈아넣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,

- 지방을 기피하고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,

- 곳곳에서 과격한 형태로 드러나는 갈등

- 우리 나라의 각 영역에서 같은 원인으로 비슷한 문제들이 비슷하게 드러나고 있다.

- 문제의 원인을 탐구할수록 해결책 탐색은 요원해지지만 각 분야에서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.

-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온전히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.

 

※ 감사하게도 (일면식도 없는) 저자께서 직접 보내주신 책입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