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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읽기

[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](제임스 체셔, 올리버 우버티 著, 송예슬 譯, 2022)

● "보아라, 보이지 않는 것을"
- 몇년 전 데이터 시각화를 내 주특기 중 하나로 만들기로 결심했다.
- 처음에는 어떻게 그리나가, 그 다음에는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었다.
- 파이썬의 Matplotlib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기술이 손에 익은 뒤,
- 데이터 시각화 교과서데이터 시각화, 인지과학을 만나다와 같은 좋은 책을 바탕으로 표현 방법을 알게 된 뒤에는
- 실제 만나는 데이터들 중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지가 고민이 되었다.
- 스스로 "Visualizing the invisible"이라고 표현을 하고 검색을 해보니 동명의 자료가 엄청나게 쏟아진다.
- 흔한 고민이라는 증빙일 수도 있지만 반가웠다.
- 우연히 만난 책 소개 글로 확 끌려들어 집어든 이 책의 서문 제목도 "보아라, 보이지 않는 것을"이다.

● 지리 데이터 시각화
- 어려서부터 이것 저것 그림이 많이 붙은 지도에 익숙하게 자라왔다.
- 지형을 의미하는 파랑(바다, 강, 호수)과 초록(낮은 육지), 갈색(고지대), 흰색(극지)로 지도가 칠해져 있었고
- 뉴스가 끝나면 우리 나라 인근 지역의 지도에 고기압과 저기압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,
- 철마다 오는 장마전선은 어디에 걸쳐지며 태풍은 어떤 길로 언제 지나가는지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.
- 해안선과 국경을 중심으로 한 지도 위에 한 겹 이상의 정보가 겹쳐있는 것이 정상이었기에 딱히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.
- 이 책의 서문은 이런 일상을 감사하게 느끼게 해 준다.
-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식상하기까지 한 저 작은 그림들, 몇 개의 선이 알고 보면 수많은 이들의 노력의 결과이며,
- "이 모든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"라는 고정 관념에 맞서 싸운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.

● 데이터 수집, 정리, 표현
- "모든 것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" 박물학자 알렉산더 훔볼트와
- "거대한 총체를 믿게 하려면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한다"고 믿은 그가 지도책 제작을 의뢰한 하인리히 베르크하우스.
- 이 두 사람에 의해 지리적 위치와 원근을 표현하던 지도는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생태와 식생을 담게 되었으며
-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, 찰스 부스의 빈곤 지도로 이어지면서 인류의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.
- 그리고, 이들과 뜻을 같이 한 이들에 의해 통치의 도구였던 지도는 우리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.
- 요즘의 지도는 선거 결과나 적국의 군사 행동만을 담지 않는다.
- 오픈스트리트맵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이들 덕택에 동네 지도가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으며,
- 처음 가는 길도 GPS 덕에 예전처럼 낯선 이들을 붙잡고 불확실한 정보를 묻지 않아도 된다.
- 자전거를 신나게 달린 후 스마트 워치에 기록된 지도를 SNS에 뿌듯하게 게시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고
- 코로나 시국에서는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을 막았다.
- 권말에도 언급되지만, 2020년 5월 한국에서 250명이 사망할 때 인구가 비슷한 영국에서는 27,454명이 숨졌다.
- 당시의 정책을 "다 쓸데 없는 짓"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스스로 코로나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.

● 이 책의 구성
- 이 책은 훔볼트와 베르크하우스의 작업부터 IoT를 이용한 현대의 데이터 수집, 활용에 이르기까지,
- 약 200년 가까운 지리 데이터 시각화의 역사를 4개의 관점에서 살펴 정리하고 있다.
1장 :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- 인류의 기원과 흔한 성씨 (김씨와 견줄 수 있는 건 모하메드 뿐이다)
2장 : 우리는 누구인가 - 인구 조사와 이동 방식에 대한 이야기
3장 :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- 통치 도구로서의 지도, 노동과 전쟁 등
4장 : 우리가 마주하는 것 - 기후 변화와 범죄에 대한 이야기
-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각 장의 내용이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.
- 보통 2페이지에 걸쳐 있는 개별 이야기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나열되어 있어 중간부터 읽어도 좋다.
- 전체적으로 익숙한 기사와 낯선 뉴스가 반반의 비율로 섞여 있어 읽기 편했고, 무엇보다 그림이 아름답다.
- 저자들이 이 책을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데이터 수집과 시각화 작업 중 어디에 노력을 더 많이 들였을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멋진 사례들이 펼쳐진다.
- 특히 지도를 표현하는 방법을 사례에 맞게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데, 책 뒤의 부록에서 각 도법의 장단점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.

●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
- 3장과 4장에 걸쳐 등장하는 기후 위기 사례들은 다른 어떤 주제들보다 섬뜩하다.
- 앞선 사례들이 흑사병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지금은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들이거나, 미국의 인종문제처럼 딱히 실감을 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반해 기후 위기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.
- 2017년 남극에서 웬만한 섬나라만한 빙붕이 떨어져 표류한 사례,
- 점차 증가하는 여객기로 이동중 난류를 만날 수 있는 상황 (서울-로스엔젤레스 항로는 1.5%에 달한다),
- 2010년 이후 급증하는 열대 사이클론 수는 당장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며 앞으로 더 심해질 일들이다.
- 일부 정치인들이 목에 핏대를 올리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의 소속 정당이나 평소 행적에 의해 필터링이 되는 반면
- 이처럼 담담하게 그림 한 장과 짧은 설명을 내밀며, "보셨죠? 어쩌실 겁니까?" 라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다.

● 데이터 시각화: Data Visualization
- 숫자로 표현된 데이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의미가 있지만, 이 것으로는 정의가 부족하다 느낀다.
- 케이티 보먼의 논문에서, 그리고 인터스텔라 영화에서 블랙홀이 영상으로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밝은 빛 속 뻥 뚫린 구멍을 보며 공포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낀다.
-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발견한 희망봉, 수에즈 운하와 말라카 해협이 어디 있는지 지도에 점을 찍는 것으로는 부족하다.
- 시대별로 이 점들을 스쳐가는 항적을 보고 나서야 이렇게 세상이 가까워지고 연결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.
- 시각화된 데이터는 우리 눈과 대뇌의 시각적 프로세스를 거쳐 인지되며, 이 과정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직관적이다.
-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데이터를 넘어서는 주장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데이터 시각화라고 믿는다.
- GIS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하며,
- GIS를 다루지 않더라도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관점을 크게 배울 수 있다.

● 제목이 살짝 아쉽다.
-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의 원제는 Atlas of the invisible.
-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삶과 지구의 여러 데이터를 지도로 표현한 책이라는 의미인데,
- 지금의 제목이 되면서 이 의미가 조금 깎이는 느낌이 든다.
- 뭐라고 하면 더 좋은 제목이 될까 싶지만 딱히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