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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지과학](기타하라 요시노리 著, 조태호 譯, 2022)

● 인지과학을 공부한다.

- 전공도 아니고 지금 연구하는 분야도 아니지만 틈이 날 때마다 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있다.

-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소통 오류를 많이 겪었다.

-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남 탓을 할 수 있는 사례로는 "설명을 해 달랬더니 논문을 던져주고 읽으라고 한" 경우가 있었다.

  (내 분야의 논문을 읽기도 만만치 않은데 생판 처음 보는 분야의 논문을 읽고 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.)

- 내 탓을 할 수 있는 사례로는 "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" 사례가 있었다.

  (피해자와 가해자만 바뀌었을 뿐이다. 상대 입장에서 낯선 용어와 형식의 그래프를 잔뜩 드렸다.)

- 처음 겪을 때는 남 탓과 내 탓을 번갈아가며 하다가 감정만 급격히 소모되었으나 변리사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깨달았다.

- 하나는 이런 일을 나 혼자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, 또 하나는 가해와 피해의 원인이 동일하다는 것.

-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헛발질만 하고 있으니 대화가 될 리가 없다.

- 이 이유로 데이터 시각화에 이어 인지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.

 

● 인공지능 시대

- 멀게만 느껴진 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와버렸다.

- 식당에선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로봇이 서빙을 한다.

-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는 인공지능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영상을 추천한다.

-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국 움직여야 하는 건 사람이다.

- 적어도 한동안 제도상의 이유로라도 인공지능은 도구로서의 역할에 머무를 것이고 (그렇게 사람들이 제약할 것이고)

- 내 목표는 인공지능의 도움만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.

- 인공지능에게 정보와 의도를 전달하는 것은 차라리 쉽다. 사람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을 공부해야 한다.

 

● <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지 과학>

- 언뜻 보기에 매우 가볍다.

- 말랑말랑한 느낌의 그림이 채우고 있는 표지와 내용.

- A4 절반 가량 크기의 300페이지 남짓한 책.

- 서울 출장길에 읽어버리기 딱 좋은 느낌이라 그렇게 시작했다 휴일을 포함해 이틀을 들였다.

- 저자가 괜히 "교재로 사용할 만한" "인지과학 전체를 폭넓고 체계적으로 파악하는" "넓고도 깊은 책"이라는 표현을 서문에 쓴 게 아니라는 건 한 3분의 1쯤 읽다 보면 알게 된다.

- 중학교 때 수은 병을 아무 생각없이 들었다 그 무게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다.

- 머리에 들어오는 다양한 용어부터 온갖 메커니즘에 대한 밀도있는 설명이 적잖이 무겁다.

- 몇십 페이지 읽다 보면 머리가 뜨끈해져서 쉬지 않을 수 없다.

- 대학교에서 한 학기에 걸쳐 강의하기에 적당한 분량이라는 생각이 든다.

- 실제로 저자는 "강의에 사용할 것을 감안하여 15장으로 구성했다"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.

- 예시도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는데, 저자의 일본어 예시를 한국어 예시로 바꾸느라 애를 먹었을 역자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바친다.

 

● 인지과학 (Cognitive Science)

- 인지과학이 걸친 분야는 실로 방대하다. 심리학, 철학, 수학, 언어학, 신경생리학, 컴퓨터 과학까지.

- 오죽하면 인지과학자 중 일부는 인지과학을 "정해진 정의가 없다"는 것으로 정의한다.

-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관심을 가진 내 경우, 컴퓨터 과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경생리학과 심리학, 언어학을 어느 정도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.

- 내가 하는 업무의 특성과도 비슷한데, 각 분야의 전문가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만큼을 이해하는 일은 일견 부담이 적고 가성비가 높아보이지만 "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"는 상태가 여럿 중첩되어 자괴감에 빠지기 딱 좋다.

- 데이터 시각화 분야에서 존경하는 콜린 웨어(Colin Ware) 교수가 컴퓨터 과학과 심리학 두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안구의 운동, 시신경부터 대뇌 시각 피질의 구조와 동작을 의대 교수처럼 설명하는 건 알고보면 매우 자연스럽다.

- 심지어 이 책에서는 시각 뿐 아니라 청각과 촉각, 언어 처리와 의사 결정, 문제 해결 능력을 포함한 창조, 감정(情動), 사회적 행동까지 다룬다.

- 이 글에서도 모든 장을 다루는 것은 무리이고, 기억에 남는 장 위주로 정리해본다.

 

● 4장. 기억

-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잘 알려진 엣킨슨 등의 이중 저장 모델에 따르면, 단기 기억에 들어간 정보는 리허설에 의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간다.

- 리허설은 쓰거나 소리내 말하는 등의 재현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고, 단기 기억을 유지하는 유지 리허설과 장기 기억 속의 정보와 연관시켜 기억하기 쉽게 만든 후 장기 기억으로 전송하는 정교화 리허설이다.

- 리허설을 반복할 수록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좋다. 어려서 선생님들이 내 주시던 "깜지" 숙제의 근거가 될 수 있겠으나 의식적으로 정교화하려는 노력이 없으면, 다시 말해 무념무상으로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으면 깜지 100장을 써도 장기 기억으로 전송되지 않는다.

- 이와 별개로 처리 수준 모델이 있다. 리허설 횟수가 아니라 처리 수준에 달려 있다는 개념인데, 글자 형태만 볼 때보다 입을 열어 소리를 말할 때, 그리고 의미까지 고려하는 의미 처리 수준을 거칠수록 기억의 정밀화가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. 

- 책을 읽고 이렇게 짧은 글이라도 남기면 확실히 기억이 더 오래 가고, 나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회상하면 더 오래 간다.

- 기억된 정보는 다시 꺼내어 쓸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.

- 백지 상태에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재생(recall), 선택사항 중에서 떠올리는 것을 재인(recognition) 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재인이 재생보다 쉽다.

- 재생은 시간적으로 앞서 제시된 정보에 의해 촉진되기도 하는데, 이를 프라이밍 효과(priming effect)라고 한다. 네트워크 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개념들 중 일부가 활성화되어 따라 들어오는 식이기 때문에 선행 지식이 많을수록 유리하다.

- 망각된 정보는 다시 꺼낼 수 없다고 여겨지는데, 간혹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떠오르기도 한다는 점은 정보가 사라졌다기보다 꺼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증빙한다.

- 망각은 정보간 간섭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기존 정보가 새 정보의 저장을 방해하기도 하고 그 역도 발생한다.

-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꺼내기 위해서는 기억에 담을 때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 유리하다.

 

● 7장. 문제 해결

- 똑같은 연역 추론 문제(동형 문제)인데도 표현에 따라 정답률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.

- 이 차이는 과제의 내용이 추상적인지, 아니면 친근하고 구체적인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데, 친근하고 구체적인 문제의 답을 더 잘 도출하는 현상을 주제화 효과라고 한다. 과제를 머릿속에 그려 넣으며 답을 도출한다는 뜻이다.

 

● 9장. 창조

-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에는 과거 지식, 절차, 접근법을 활용하는 재생적 사고와 새로 고안한 절차나 접근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생산적 사고이 있다.

- 선행하는 문제 몇 가지에 대한 해법을 경험하면 이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데, 이를 고정 자세라고 한다.

- 기존의 사물을 사용해 새로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본래의 용도에만 매달리면 기능적 고착이 발생해 문제를 풀 수 없다.

- 고정 자세와 기능적 고착은 효율적 솔루션을 찾는 데는 유효하지만 생산적 사고에는 방해가 된다.

- 통찰력은 백지에서 나오지 않는다. 미국의 인지과학자 올슨이 제안한 표상 변화 이론이 있는데,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 실패가 반복되면서 제약 조건들이 완화되고, 효과적인 조작자가 적용되면서 통찰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.

-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문제는 대상, 관계, 목표라는 세 가지 레벨에서 제약이 되어 있는데,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가 도구를이제까지와 다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등 심적 표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제약이 완화고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는 의미다.

- 익숙한 대상으로부터의 유추도 통찰에 도움이 된다. 목표와 비슷한 근거를 장기 기억에서 검색하고 근거로부터 목표의 특징을 찾아 답을 생성하는 과정이다.

 

● 어떻게 살 것인가

- 많은 범위에 걸친 이 얇은 책을 읽으며 계속 든 생각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정리된다.

- 사실 그간 얄팍하게 쌓은 지식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.

-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류보다 우수한 인공지능으로 뒤덮일 세상에서, 어떻게 인공지능을 잘 쓸지를 고민하게 된다.

- 그리고 또 한편으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, 어떻게 아이에게 경쟁력을 갖추게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.

- 내가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은 재생적 사고의 틀이 강했다. 그 때는 외우는 것도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의미가 다르다.

- 지식을 빠르게 조합하기 위해 머리에 넣어야 하는 것이지, 머리에 넣었다 빼는 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.

- 최근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될만큼 빠르게 바뀔 것이다.

- 그런 상황에서 배운 문제만 빠르게 푸는 기능적 고착에 머물러 있으면 확실하게 망한다는 건 알 수 있다.

  가장 대체하기 쉬운 인력이 되어버리는 지름길이다.

- 남들이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워야 하고, 그럴려면 실패를 해야 한다.

-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서 실패를 하고 배우려면 일단 적은 분야에서나마 남들보다 멀리 가야 하고

- 여기서 배운 것을 또 다른 방향으로 멀리 간 이들과 함께 나누어 함께 성장할 줄 알아야 한다.

-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