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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미드저니 프롬프트 마스터 가이드](조남경 著, 2024)

● "딸이 일곱 살쯤 됐을 때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

- 대학에서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걸 가르친다고 했더니 아이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며 되물었다.

- '그럼 그 사람들은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잊어버렸단 말이야?'"

- 카브릴로 칼리지 교수를 지낸 하워드 이케모토(Howard Ikemoto)의 유명한 일화.

- 창작 면허 프로젝트 (대니 그레고리 著, 김영수 譯, 2009)에 실린 표현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

- 원문은 "You mean they forgot?" 이라는 훨씬 짧은 문장으로,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가 더 잘 전달된다.

 

● 그림은 즐겁다.

- 이케모토의 딸 뿐 아니라 우리는 어려서 모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.

- 아이에게 바닥과 벽은 즐거움을 주는 커다란 도화지가 된다.

- 우리는 어려서 모두 그림을 그리며 놀았지만, 많은 어른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.

- 어떤 분의 글처럼, 그림은 이래야 한다는 규칙과 이에 따른 평가를 받으면서부터일 수도 있고

- 그저 그림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들이 많아지면서 오래된 장난감처럼 잊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.

- 그러나 그림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은 독특하다.

- 허영만이 <오! 한강>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를 빌려 말한 것처럼 그림은 혁명인지도 모른다.

- 눈 앞에 하얀 캔바스를 놓음으로써 기존의 세상을 부정하고 그 위에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.

- 그림을 그리며 마치 작은 세상의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.

 

● 그림을 그리려면 기술이 필요하다고들 생각한다.

- 대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무언가의 형태를 비슷하게 모사하는 행위로 한정해서 생각한다.

- 내가 그린 귀여운 고양이 그림을 본 친구가 "강아지 귀엽다!"고 말하면,

- 귀여움이 전달된데서 오는 동질감이나 기쁨보다 고양이가 강아지로 보였다는 부끄러움이 크다.

- 그림을 기술력으로 간주하니 금손이니 똥손이니 하는 표현이 생겨나고

- 못그리느니 안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.

- 그런데 2013년, 미술계의 최고 명문이라 일컬어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대 실기고사를 완전 폐지했다.

- 뉴스를 보고 당황하고 있던 내게 한 전직 디자이너께서 주신 설명으로 100%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.

- "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손기술 봐서 뭐하게?"

 

● 이미지 생성 AI

- CG (Computer Graphics) 라는 말만 붙어도 상당히 혁신적으로 보이던 게 엊그제인데

- 어느새 컴퓨터가 그림을 보고 설명을 하는 시대를 지나, 말 몇마디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됐다.

- 나는 2022년 여름부터 DALL.E2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, 미드저니는 미술전 대상을 가져갔다.

- 한 사진전에서는 최우수로 선정한 작품의 작가가 사실 AI 그림이었다며 수상을 거부했다.

-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논란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기 위한 퍼포먼스였다.

- Microsoft는 DALL.E3를 Designer에 탑재해서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게 공개했다.

- 연구자의 파워포인트에서, 곳곳의 포스터에서 생성AI의 흔적을 찾지 않기가 더 어려워졌다.

- 명절에는 AI로 그린 연하장과 카드로 안녕을 빈다.

- 어른들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. 말로.

 

● 미드저니 (Midjourney)

- DALL.E, ideogram, Adobe Firefly, Imagen, Stable Diffusion 등 여러 이미지 생성 AI가 있지만

- 이 중에서도 미드저니는 많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. (Stable Diffusion은 또 다른 의미로 독특하다)

- 디스코드를 사용해야 하고, 매개변수가 여럿 있어 코딩하는 느낌이 강하고, 입력 이미지를 활용한다.

- VariationUpscale을 클릭 한번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강력한 기능이고

- 다른 사용자들과 한 공간에서 그림을 만들다 보니 끊임없이 올라오는 걸작들을 넋놓고 구경만 할 수도 있다.

- 업데이트도 너무 빠르다. 오픈소스인 Stable Diffusion이 여러 가지를 치고 있다면 한 줄기가 곧게 올라간다.

- 결과물의 퀄리티가 월등히 높고 유료 사용자에게는 그림의 소유권을 주어 전업 작가들이 쓰기 좋다.

- 프롬프트를 대충 넣어도 놀라운 퀄리티의 이미지가 나오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즐겁게 사용할 수 있지만,

-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파라미터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.

- 이 책은 미드저니 접속을 위한 디스코드 사용부터 다양한 파라미터 사용법을 풍부한 예시와 함께 알려주고 있다.

- 미드저니를 손에 익히고자 하는 분이라면 한번 따라해보는 것 만으로도 손 끝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.

- 디스코드가 낯선 분들을 제외하면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.

- 예쁜 그림책 보듯 휴식시간에 아무데나 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.

 

● 프렌즈 미술학원

- 이 책의 출간을 기다린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얼마나 재밌게 이 길을 걸어왔는지 알기 때문이다.

- 저자가 AI프렌즈 단체카톡방에 합류할 즈음부터 생긴 문화가 있다.

- 누군가 AI로 생성한 그림을 하나 만들어 올리면, 그걸 본 여러 사람들이 각자 비슷한 그림을 만들어 올린다.

- 프롬프트를 어떻게 바꿨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서로에게 알려주며 호기심을 채우던 집단학습 시간이었다.

- 누군가 간단한 프롬프트로 만든 그림을 이른 아침에 올리면, 시간을 정해놓고 입력 프롬프트를 맞추는 놀이도 했다.

- 힌트는 "한글 다섯 자" 정도.

- 달리3가 나오기 전 "딸기탕후루"로 만든 그림은 아무도 정답을 맞출 수 없었고 "풀무원"은 허탈한 웃음을 남겼다.

- 여러 사람들이 정답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는 동안 프롬프트와 결과물 사이의 관계망이 머리 속에 생겨났다.

- AI프렌즈 단톡방에서 다같이 미술공부를 하던 시간이라 프렌즈 미술학원이라 불렀다.

- 저자인 조남경님은 이러한 놀이 한 가운데 계셨던 분으로, 여기저기서 얻은 소중한 정보를 자주 나누어주셨다.

- 그 때 사용하던 명칭이 자판기 키워드.

- 자기도 줍줍한 것이라며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, 덕택에 공부가 많이 됐다.

- 이 이름은 본 도서의 별책부록 이름이 됐다.

- 같은 프롬프트가 저자가 사용하는 미드저니와 내가 주로 쓰는 달리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차이를 확인해보고 다른 프롬프트로 극복해보는 놀이도 즐거웠다.

 

● "생성AI 그림은 식상하다"

- 생성AI를 빠르게, 많이 접하신 분들 위주로 이러한 비판이 들리기 시작한다.

- 그 말이 맞다. 나도 같은 비판이라기보다는 평가를 여러 차례 한다.

- 한 사람이 제한된 시간을 사용해 한정된 학습을 하고 본인의 개성을 담아 내놓는 결과물과 달리,

- 생성AI는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사람들의 비슷한 프롬프트에 비슷한 결과물을 내놓는다.

- 생성AI 자체가 가진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, 사람들의 프롬프트 자체에 개성이 없어서 더 그런 것으로 보인다.

- 생성AI를 직접 사용하며 강의하는 동명대 시각디자인과 원종윤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, 생성AI 그림에 대한 일반인과 아티스트의 반응이 갈린다고 한다.

- 일반인은 간단한 프롬프트를 넣고도 나오는 결과에 감탄하는 반면

- 아티스트들은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의도대로 잘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.

- 이공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나도 같은 현상을 느낀다.

- 특정 화학 반응, 원자간의 각도 등 본인들의 연구 대상에 대해서는 프롬프트가 한없이 구체적인 반면 

- 전체적인 색감이나 질감, 명도와 채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생각조차 없어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.

- 그림이나 사진같은 시각적 취미가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은 머리 속에 이미지를 떠올리는 근본적인 능력이 다른 것 같다.

- 그리고 평소 이 분들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.

 

● 이발소 그림 vs 밥 로스

- '이발소 그림'이라는 표현이 있다.

- 무명 화가가 널리 알려진 명화를 훈련된 솜씨로 베껴낸 그림들이 이발소 벽에 걸렸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.

- 현실에서는 이 또한 발전해서 팝아트가 되었지만,

- 역사가 짧은 생성AI의 세계에서는 이발소 그림들이 대거 양산되고 있다.

- 생성AI나 무명 화가들이나 그림 솜씨가 없어서 평가절하 되는 것이 아니다.

- 그림에 담는 생각이 없고, 주장이 없고, 목적이 없고, 독창성이 없어서 그렇다.

- 손 끝의 기술만 남아서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은 생명력을 잃는다.

- 생성AI도 마찬가지다. 영혼이 없는 프롬프트는 영혼이 없는 그림을 낳는다.

- <그림을 그립시다>로 유명한 밥 로스도 이발소 그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. 아주 많이.

- 그러나 밥 로스의 독창성은 그림 자체에 있지 않았다.

- 그림에서 멀어진 어른들로 하여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,

- 이 중 일부가 그림에 자기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박수를 받는 것이다.

- 지금 생성AI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.

- 남들이 보기에는 식상하고 허잡한 그림이지만 본인에게는 추억을 떠올리는,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이 된다.

- 지금 수준에서도, 프롬프팅을 잘 못해도 혼자 그리며 흐뭇해하고 즐거워하기에 충분한 도구가 되어 있다.

 

● 조금 연습해보자.

- 혼자만의 즐거움이, 마음이, 외로움이 남에게 통하기 위해서는 조금 연습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.

- 더 이상 "고흐 스타일로 그린 운동화"는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.

- 필요한 연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.

- 첫 번째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연습이다.

-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의 이미지, 남들이 배꼽을 잡을 만한 이미지, 공감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.

-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과 비슷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.

- 두 번째는 이렇게 떠올린 이미지를 표현하는 연습이다.

- 이 책에 가득 담긴 여러 스타일과 테크닉, 파라미터 사용법은 이를 위한 밑거름이다.

- 당장은 내 마음과 상관이 없더라도 이렇게 넣으면 저렇게 나온다는 것을 알면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게 된다.

- 프롬프트를 잘 쓰는 방법도 따로 공식을 외울 생각을 하기보다 소설책을 많이 보기를 권한다.

- 숱하게 나오는 장면 묘사 글을 머리 속에서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게 되면, 

-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스타일, 테크닉, 파라미터를 찾아 쓸 수 있게 되면 된다.

- 운전면허는 면허시험장의 차를 잘 몰기 위한 게 아니다.

- 내 차를 몰고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연습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