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
책읽기

[이상한 나라의 앨리스, 거울 나라의 앨리스] (루이스 캐럴, 1865, 1871)

  • 앨리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.
    • 바쁘다 바빠 하며 뛰어가는 토끼
    • 얼굴만 남고 서서히 사라지는 고양이
    • 카드 병사와 사나운 여왕.
  • 그렇다면, 성인이 되어 앨리스 이야기를 붙들고 앉아 읽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.
    • 후추가루로 가득찬 집 안에서 애는 울고 요리사는 물건을 마구 던진다.
    • 아기 엄마인 공작부인은 뜬금없이 여왕의 크로켓 경기에 가고, 아이는 돼지가 되더니
    • 앨리스는 3월 토끼와 모자장수, 겨울잠쥐와 함께 다과회를 한다.
    • 이걸 읽고 있는 솔직한 내 심정은 "대체 이게 뭔소리야".
  • "아빠, 책 읽어주세요."
    • 아이들이 읽어달라며 가져온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.
    •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급작스러운 전개에 아동용이라 축약을 심하게 했네 싶었고,
      제대로 된 스토리가 궁금해서 ebook으로 봤는데 다를 바가 없었다.
    •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붉은 여왕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글링을 했더니 붉은 여왕은 2권,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이었다.
    • 2권은 1권보다는 장면 전환이 조금 덜 뜬금없지만 챕터별로 등장인물이 분리된 것은 마찬가지. 정신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.
    • 애초에 이웃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.
    • 사실 어릴 때도 제대로 앨리스 이야기를 읽은 적은 없는 듯 하다. 어려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 것은 디즈니에서 만든 1951년작 애니메이션의 영향이라 생각된다.
  • Alice is everywhere
    • 앨리스에 대한 해석은 여기저기 많아서 굳이 여기까지 가져올 것은 아니다.
    • 톨킨이 세계관을 창시했다면, 찰스 도지슨(=루이스 캐럴)은 말장난을 좋아하는 이야기꾼 수학자.
    • 앨리스 이야기로부터만 생성된 영어 단어도 여러 개, 현상 이름도 여러 개. 캐릭터도 여러 개.
    • 오히려 내겐 150년 전에 쓰인 고전에서 오는 낯설음이 재미있다.
  • 대사가 길다.
    • 툭하면 키가 커지고 작아지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앨리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시를 암송한다. 150년 전 교육의 단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.
    • 등장인물들은 서로 자기가 알고 있는 노래를 들려주며 요즘 같으면 몇 마디 말로 할 말을 앞뒤 설명을 붙여가며 한참 이야기한다.
    • 이 부분이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진다. 오래 전 반지의 제왕을 읽다가 툭하면 부르는 긴 노래에 질려서 덮어버렸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. 당시 톰 봄바딜을 버텨내지 못했다.
    • 재미있는 것은, 신경질을 부리며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여왕의 말투가 현대의 말투에 가깝다는 점이다.
    •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은 것이긴 하지만, 역자가 일부러 현대인의 말투를 여왕에게 입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.
  • 지식의 편린만 있으면 구글링을 통해 나머지 부분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즘이다.
    • 뭔가를 외우도록 강제하는 행위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있다.
    • 하지만 지혜가 담긴 글, 아름다운 글을 외우고 가끔 떠올리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불러올 수도 있고,
    • 무엇보다 한 해 한 해 조금은 더 성숙해져야 할 나와 글이 함께 익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.
  • 가끔 옛날 책을 읽는다.
    • 지금은 동화라지만 당시엔 동화가 아니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완역판으로 읽었고
    •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이유로 피노키오를 읽었다.
    • 걸리버 여행기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, 어릴 적 읽었던 책 속에선 분명 없었기에 확인하고자 읽었다가 인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마주했다.
      • 출간은 1726년. 명예 혁명(1688년)에서 불과 40년 지난 시점이었다.
      • 당시 기준에서 왜 금서가 됐는지 알 것 같았다. 
    •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들었던 책에서 피노키오는 기억에 남아있는 아동용 동화책,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험한 일을 겪었고, 훨씬 나쁜 아이였으며,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용서 속에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람으로 거듭났다. 
      • 머리 식히려다가 신약성서 복음서를 읽은 느낌.
      • 실제로 피노키오가 죽었다가 살아난다.
      • 심지어 아버지는 목수, 아버지 이름은 제페토. 제페토는 이탈리아어로 요셉.
    •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고서는 의문이 가득해졌다.
      • 원래 사회계약론을 읽으려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부록처럼 붙어 있던 그나마 쉽고 얇은 부분을 읽었다.
      • 그럼에도 불구하고, 당시 고1이라는 나이를 감안해도 세 페이지를 온전히 넘어가지 못했다.
      • "당시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고 사회에 의문을 가졌다고? 그 당시 문맹률에, 그 당시 교육 수준에?"
      • 여름방학 독후감 숙제였는데, 선생님께서 의도하시지 않은 의문이 생겨버렸다.

  • 요즘 필하모닉의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가 의도한 곡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.
    • 비엔나에서 음악을 공부하시던 분께 들은 이야기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. 
    •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을 위한 곡을 많이 지었지만 당시의 클라리넷은 형상도 각지고 소리도 달랐다.
    • 피아노도 마찬가지. 꼬마 모차르트가 연주한 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피아노의 아버지 뻘인 하프시코드였다.
    • 당시의 정서로 듣기에 좋은 곡이 당시의 악기로 연주되었을 것이다.
  • 150년 전의 아이들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.
    • 앨리스 이야기는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.
    • 그러나 150년 전의 아이들에겐 긴 호흡과 툭하면 나오는 노래가 방해요소가 아니라 즐거움이었을 것 같다.
    • 앨리스 이야기를 다 읽은 뒤, 아이들이 저 책을 또 가져왔다. 
    • 처음의 당황함은 사라졌고 150년 전 루이스 캐럴과 함께 배를 타면서 귀를 쫑긋했을 네 명의 아이들 상상에 즐거워졌다. 
    •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. 우리 아이들과는 달랐을텐데.